

같은 마음 ▶페일
"안녕?"
"이이이자야아아아!!"
이자야의 얼굴을 보자마자 시즈오는 고성을 내지르며 근처의 주차금지 표지판을 움켜쥐었다.
"팔자 좋게 인사나 늘어놓다니, 이제야 저승 갈 결심이 선 거냐?"
그 표지판을 무기 대신 휘두를 심산이었다. 상대는 그가 증오해 마지않는 벼룩, 오리하라 이자야였으니 주저할 것은 없었다. 시즈오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가자 튼튼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표지판 기둥에 손자국이 생겼다.
"역시 똑 닮았네, <그>랑."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즈오는 행동을 완전히 멈췄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분명 이자야인데 갑작스레 관통한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시즈오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성격은 물론 완전 딴판이야."
거기까지 듣자 시즈오는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직감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시즈오가 물었다.
"너, 벼룩이 아니지? 누구냐?"
시즈오의 앞에 선 그가 대답했다. 이자야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로.
"하치멘 롯삐. 사람들에게 대라고 이자야가 지어준 이름이야."
오피스텔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롯삐의 몸이 홱 끌려갔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쿵 소리와 함께 등이 벽에 닿았다. 목 부근에서 밀어붙이는 힘에 숨이 막혔다.
"만나지 말랬지."
"놔 줘."
"내가 그 자식은 만나지 말라고 말했지."
롯삐를 압박하는 이자야의 붉은 눈은 살기등등했다. 롯삐는 무표정하게 이자야를 마주 보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이 둘보다 닮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은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붉은빛이 도는 까만 눈동자도, 왼쪽 눈썹 위로 흘러내린 앞머리도, 깨끗한 이목구비와 얼굴선도.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똑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면 이자야와 롯삐 자신조차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완벽히 똑같은 존재. 다만 태어난 세계가 다르다.
"나한테 화내는 거 이게 두 번째야."
한참이 지나 롯삐가 말했다. 이자야는 손을 탁 놓았다. 롯삐는 구겨진 옷 앞섬을 매만지다 신발을 벗었다.
"신기하네, 너란 사람."
롯삐가 안으로 들어가며 흘러가는 말처럼 말했다. 듣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이자야는 그런 롯삐의 말에 코웃음 쳤다.
"처음은 내가 나를 이자야라고 소개했을 때였어."
"나도 내 자의식이 그렇게 강한지 그때 처음 알았지 뭐야."
롯삐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자야의 사무실에서는 엷은 커피 향이 났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기 시작하는 안타까운 시간이다. 롯삐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화를 이었다.
"별로 네 존재를 위협할 생각은 없어. 도플갱어 같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내 비일상은 매 순간 달라지는 인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시즈쨩이나 세르티나 너 같은 인간 아닌 것들까지 내 삶에 끼어들 필요는 없어."
이자야는 차갑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이자야의 일을 돕는 나미에는 일찍 퇴근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사무실을 가로질러 간 이자야는 커피를 잔에 따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인간들의 세상에서 사라져주면 고맙겠어."
이자야는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커피를 내려놓고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이내 이자야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말이 없어진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롯삐는 사무실 창가에 있는 파티오 테이블로 갔다. 의자를 빼 앉으면서도 이자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완전히 같되 태어난 세계가 다르지. 롯삐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되새겼다. 무엇이 그를 이 세계로 이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허락된 시간만큼을 이 세계에 머물 테고, 그 제한된 시간 동안 이자야의 곁에 있으리라. 혹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문득 롯삐가 입을 열었다.
"너는 선택했지."
갑자기 나온 롯삐의 말에 이자야가 고개를 돌렸다.
"세르티와는 공생을, 시즈오와는 싸움을."
"무슨 말이야?"
가시처럼 날카로운 말이 되돌아왔다. 역시 오늘 일로 더욱 미움받고 말았나. 그래도 오늘 아침까지보단 이게 나을지도. 롯삐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나한테는 왜 <무관심>이야?"
이자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화낼 때 말고는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잖아. 나는 너에게 특별한 존재 아냐?"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같은 존재라면 머리 좀 제대로 써. 그리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난 너 같은 것의 존재를 내 삶 속에서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겠지. 롯삐가 속삭인 대답은 이자야에게 들리지 않았다. 롯삐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 화를 냈을 땐 내게 이름을 줬지.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자야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롯삐를 외면했다. 이자야의 옆모습을 향해 롯삐가 담담하게 요구했다.
"애정을 줘."
이자야는 롯삐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롯삐는 굴하지 않고 이자야에게 말을 걸었다.
"공생도, 싸움도, 무관심도 아닌 사랑을 줘. 내가 널 떠날 때까지."
<귀찮네>. 롯삐는 이자야의 입술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자야의 차가움이 익숙하다고는 해도 저런 반응은 역시 좀 아팠다.
"난 인간을 사랑하기도 바빠."
롯삐가 이자야의 대답을 포기할 때 즈음, 이자야가 말했다.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냉정한 목소리였다.
"그러니 내 사랑을 낭비하게 하는 괴물은 시즈쨩 하나로도 이미 버거워."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롯삐는 그 말에 몸을 일으켰다. 이자야는 롯삐의 말에 대꾸한 적이 없는 것처럼 일에 한창이었다.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어느새 이자야의 커피 잔에서는 김이 오르지 않았다. 따라놓기만 하고 손도 대지 않은 커피였다. 사무실 전체에 퍼져 있던 향도 이제는 느낄 수 없었다. 롯삐는 허공에 한숨을 흘렸다.
이자야에게 존재를 드러낸 날, 이자야는 롯삐에게 두 가지를 경고했다. 하나는 절대 이자야라고 소개하지 말 것. 두 번째는 시즈오와 만나지 않을 것. 그 두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은 알았다. 잘 알았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네가 내게 특별하듯, 나도 네게 특별하길 바랐으니까. 좋은 의미로 그러길 원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이자야는 롯삐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치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롯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지, 너나 나나 마음조차 똑같구나."
그는 2층 계단 난간에 손을 얹고 이자야를 돌아보았다.
"결국 외사랑이잖아."
그 말에 눈을 든 이자야가 본 것은 롯삐의 뒷모습이었다. 롯삐는 이내 2층의 방 안으로 사라졌다. 이자야는 닫힌 방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