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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따뜻한 날의 오후  ▶츄츄

 그것은 어느 따뜻한 날의 오후, 한가한 거리를 만끽하던 키시타니 신라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악몽이었다. 늦잠에서 일어난 후 벌써 외출을 해 버린 연인의 따뜻한 온기를 그리워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현관문 밖에서 들려왔다. 말의 울음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라, 무슨 일일까. 태평하게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을 때 현관문이 세차게 열렸다. 연인의 헬멧보다 더 먼저 신라가 보게 된 것은 그 PDA였다.

  「신라! 내가 방금 굉장한 걸 보고 왐ㄴㅇ;ㅣㄹ」

  "세르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진정해! 그렇지만 세르티의 오타도 귀여……으악!"

  「부끄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방금 거리에서 요정을 발견했다고!」

  “으음? 혹시 거울이라도 본 거야?”

 이것은 물론 객관적인 사실에 불과했으나 돌아온 회답은 PDA의 문자가 아니라 볼을 꼬집는 손가락이었다. 그 말에 포함된 애정 섞인 농담을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다. 뭐, 이건 이것대로 좋지만. 키시타니 신라는 쑥스러워하는 연인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말하며 사랑스러운 연인이 건네준 것은 붉은빛이 감도는 검은 색 돌이었다. 픽시라고 하는 같은 고향의 요정을 우연히 만나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 한가한 거리의 오후에 만나기에는 너무도 기상천외한 요정이나 정작 자신의 연인 또한 동양과는 전혀 다른 영토의 사신이자 인도자인 듀라한이다. 그리고 키시타니 신라는 제법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기에 그 사실을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다. 세르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오히려 신라가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리운 꿈이라.

 그 말이 신경이 쓰였던 것은 세르티에게 그리워할만한 대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거슬렸다. 자신과의 추억을 그리워해 준다면 그야 불만은 없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연인은 신라가 없는 긴 시간을 살아온 존재다. 또 세르티는 그 세계를 단 한 사람만으로 채우기에는 너무도 정상적인 요정이었다.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생각하려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신라는 자신의 경우를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라는 웃는 얼굴로 세르티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내가 먼저 써 봐도 돼? 세르티는 순순히 그러라고 허락했다. 네가 이런 물건에 관심을 가지다니 희한하군. 

 물론 신라는 그런 물건에는 단 한 톨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 그 돌을 베갯머리에 두고 잔 것은 단순히 세르티의 곁에 고향을 그리워할 만한 매개체는 단 하나도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신라에게 있어 세르티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딱히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신라는 언제나 세르티가 현재에 충실해 주었으면 했다. 자신과 살아가고 있는 이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을, 신라 자신이 그러하듯 온전히 즐겼으면 했다. 신라는 이보다 행복할 수 없을 만큼이나 행복한 현재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신라는 세르티의 과거에만 골몰하고 있었던 나머지 정작 자신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으음……?”

  눈을 뜨니 오후의 햇살이 눈부셨다. 커튼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과 조금 서늘한 기온, 몇 가지 풀의 냄새. 신라가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눈을 비빌 때였다. 자못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깬 거야? 볼에 자국 났어.”

  “……오리하라군……?”

  “왜?”

 맙소사, 신라는 절망했다. 책상에 벗어 놔두었던 안경을 끼고 고쳐 쓰자 방금 전까지 신라가 엎드려 자고 있던 책상 맞은편에는 이자야가 의자에 편한 자세로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신라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둥근 볼과 흰 이마, 아직 날카로운 빛이 덜한 눈동자가 신라를 스윽 훑어보았다. 

  “왜 그래, 신라? 악몽이라도 꾼 거야?”

  “……으음, 오히려 지금 이 꿈이 악몽이라고 해야 하나……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네 얼굴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묻는 거야? 음, 목불인견?”

  “너무하잖아!”

  “네가 갑자기 일어나자마자 헛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그리워하다’ 라. 사랑하여 몹시 보고 싶어 하다, 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신라는 세르티가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달갑지 않았고, 역시 그렇기에 스스로가 무언가를 세르티 외의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르티는 정상이지만 자신은 본인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신라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거야. 혹시 픽시가 아니라 악마가 세르티의 미모를 질투한 나머지 이런 장난을 친 게 아닐까?”

   “정말로 무슨 소리야.” 

 이자야는 이제 신라에게서 아예 관심을 거두고 보고 있던 책의 책장을 다시 넘기고 있었다. 신라는 저도 모르게 그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늘게 보이는 손은 앳된 기가 있는 얼굴보다도 훨씬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나이프를 잡아 자연스레 남았던 흉터들이, 아직 없다.

  “의외로 네가 악마의 현신인 거 아니야, 이자야?”

 중학생인 소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대상이 오리하라 이자야라면 딱히 심한 말도 아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자야도 그 말을 듣고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책장을 넘기며 무심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랬으면 좀 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신라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것이 중학교 시절의 오리하라 이자야다. 검은 코트 대신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혹은 그저 정말로 중학교 시절의 얼굴이기 때문인지 이자야의 얼굴은 무척 어려 보였다. 

 내가 이런 걸 그리워했었나?

 어린 시절의 오리하라 이자야라. 내가 그 따위 것을 그리워했을 리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라는 픽시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연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영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신라는 이 딜레마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나는 생각보다 이 시간이 즐거웠나 봐.”

 신라는 한숨을 쉬었다. 한 번 인정하고 나자, 쉬웠다. 그렇구나. 그렇지만 역시 신라는 자신의 중학생의 오리하라 이자야를 그리워 한다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어린 시절의 이자야를 그리워했다기보다는 이렇게 둘이서 방과 후에 남아 하릴없이 서로의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거야. 신라는 그것으로 납득하기로 했다. 친구라고하기엔 박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신라는 세간의 보편적인 친구 관계가 어떠한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신라는 이자야를 악마라고 불러도 양심의 가책은 없을지언정 그를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고 실은 제법 아끼고도 있었다. 신라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복부를 쓸어내렸다. 그렇다. 무의식중으로, 다. 무의식중에 그리워할 만큼은. 

 신라는 책상 건너편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자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이 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인간애에 가득 찬 세계에서 자신의 비중이 어떨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비중이 이자야 자신의 의도와 걸맞지 않기 때문에 분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을 모두 알면서도 신라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말이지 악몽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고, 오리하라 군. 정말이지 너답네.”

 정말이지 악몽이다. 

 세르티 외의 누군가를 그리워하다니, 이 건 바람으로 간주되는 걸까. 신라는 그렇게 고민하며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깬 후 맞이한 아침은 최악의 아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가롭고 따뜻하기만 하던 거리에는 이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ㅡ마치 이자야 같은 아침이군.

 혼자 남은 집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신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악몽이 아닐 수 없다.오늘도 역시 늦잠을 자버린 바람에 세르티는 이미 외출한 지 오래였다. 날씨도 좋지 않고, 세르티도 옆에 없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다. 이런 시간에 이자야와 보낸 시간을 추억으로 떠올려야 하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로 열 받는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신라는 그 답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 말을 듣는다면 이자야는 웃으면서 너무하다고 말하겠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신라는 세상의 모든 것이 세르티라면 그 것이 광기와 닮은 찬란함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 세상은 분명 한 점 구름 없이 빛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키시타니 신라의 세계는 그야말로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조각의 그림자가 빛 한 움큼을 가리고 있었다. 세계의 크기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크기였으나 신라는 그조차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키시타니 신라의 그림자다. 세르티를 만나고 나서 그녀에게 온전히 빼앗기지 못한, 바치지 못했던 아주 작은 조각의 그림자. 신라가 친구에 싣는 아주 작은 무게다. 신라는 그림자가 자신의 사랑이 세상을 온통 뒤덥는 것을 방해하고 있음에도 결국 떼어버릴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랑에 모든 것을 불사를 각오는 되어있을 터인데. 이제 와서, 왜.

  “ㅡ소중한 친구를 ‘그리워’할 것까진 없잖아.”

 뭐, 이자야에게 있어서 자신이 소중한 친구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이자야와 자신의 세계는 그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네 세상에는 13억의 인간이 있으니 나라는 인간 하나가 특별해도 괜찮지 않아? 그렇지만 내 세상은 단 한 명의, 한명에 의한, 한명을 위한 사랑만이 존재해야 하니까. 신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 너란 존재는 정말이지 곤란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내 사랑에 더 이상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것은 신라가 이자야에게 건네는 절실한 부탁이었다.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너를 웃으면서 맞이해 줄 수 있도록, 어서 내 세계에서 무게를 앗아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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