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왜 그렇게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싫어하는 거지?  ▶유자

 왜 그렇게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싫어하는 거지?

 모처럼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오후. 야기리 나미에는 이자야에게 커피를 갖다 주며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묻고 싶은 것을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물어야 할 것이 있고 물어야 할 때가 주어졌다면 당사자에게 망설이지 않고 묻는 쪽을 택하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에게나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연구자의 호기심과 이성중에서 어느 때에는 어느 것이 앞서야 하는지, 그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경험이 가져다준 신중함이었다.

 묵묵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이자야는 그 말에 나미에를 힐끗 바라보았다가 찻잔에 손을 갖다 대며 반문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는 거지? 그러면서 찻잔에 코를 박았다. 그러자마자 씁쓸한 내음이 코끝을 확 치고 올라왔다. 나미에는 커피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쓰게 타곤 했고 이번에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자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물음에 대한 답은 곧 돌아왔다. 궁금하니까. 실로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었다.

 네모 반듯하게 잘린 대답에 이자야는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엉키고 꼬인 길을 더듬어나가듯 세심하게 더듬어나간 기억은 이윽고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고등학교 2학년. 라이진 고등학교와 라이라 고등학교가 막 통합을 한 때이자 불구대천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만난 시기였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시즈오와의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악몽이라는 말을 열 몇 번 갖다 붙여도 모자랄 정도였다. 너와 함께라면 재미있을 것 같아. 처음 만났던 날, 운동장에서 상급생 8명을 때려눕힌 시즈오를 향해 이자야는 그런 말을 던졌고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즈오가 내지른 주먹을 피해야만 했다. 충동적으로 내지른 주먹을 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궤도를 계산하지 않은 주먹은 벽에 가서 박혔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시즈오는 당황했다. 이자야는 그 틈을 타서 시즈오의 가슴을 나이프로 그었다. 원래는 정말 깊게 쑤셔버릴 생각이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로는 시즈오의 와이셔츠와 살갗을 찢는 게 전부였다. 초짜도 아니었는데 살갗밖에 찢지 못했다니. 그것만으로도 내심 분한 일이었는데 찢긴 살갗에서는 피가 몇 방울 흐르다 말고 얄미울 정도로 금세 멎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자야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겉으로는 웃었다. 생각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괴물이라고.

 쫓고 쫓기는 나날들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주로 이자야가 도발을 하면 거기에 발끈한 시즈오가 뒤를 쫓아오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고 특별했다. 그렇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을 내면서 뒤를 쫓는 이는 흔치 않았으므로. 그러나 온갖 빛깔로 가득 찼던 스릴 만점의 나날들은 어느 순간 돌연 빛을 잃고 시들어버렸다. 무가치해졌다. 이자야에게는 그것이 곧 지루한 일상이 되었다. 그 무렵 시즈오를 도발하는 일은 자신의 흥미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닌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그 즈음하여 알아버렸던 것이다.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무엇인가를 집어던질 때, 이전만큼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무의식중에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시즈오가 던진 의자나 책상을 맞아도 전처럼 멀리 나가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였다. 시즈오 본인은 몰랐겠지만, 그는 무의식 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물건을 던지면 오리하라 이자야가 괜찮을지에 대해. 그것이 못내 괘씸했다. 그래서 혀까지 날름거려가며 시즈오를 도발했다. 좀 더 힘내보라고. 좀 더 제대로 던져보라고. 어떻게 된 게 한 번도 나를 맞추지 못하는 거냐며. 조롱하는 말에 시즈오는 화를 냈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악을 썼다. 그럼에도 이자야의 눈에는 보였다. 이전의 들끓던 분노에 비하면 그것은 화라고도 부를 수 없다는 걸. 그건 어디까지나 화를 내는 척에 불과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우스운 일에 대해 배를 접어가며 깔깔 웃을 수는 없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오리하라 이자야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걸. 어떠한 관계는 쌍방의 합의나 개개인의 의도 없이 생겨나기도 했다. 오랫동안 시즈오는 혼자였다. 그도 그럴 터였다. 그처럼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이는 없다.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는 이는 없다. 모두들 무의식중에 그 폭력이 자신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오리하라 이자야밖에 없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폭력을 보고도 그를 피하기는커녕 깔깔거리며 손뼉을 치고 웃어주는 사람은. 꿈처럼 달콤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사이는 아니었으나 오리하라 이자야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곁에 있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혈육인 카스가를 제외하고.

 그런 존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감정에 휩쓸렸던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느 날 시즈오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네가 도망친다면 언제고 네 뒤를 쫓아주마. 거기엔 그럴싸한 분위기도 대사도 없었다. 책상과 의자가 교실 바닥을 나뒹구는 상황 속에서 시즈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리 말했다. 이자야는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았다. 그것은 감정을 배우기도 전에 폭력을 먼저 알아버린 이의 서투른 속삭임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외침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자야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답했다. 시즈다운 고백이네. 분위기도 뭣도 없어. 그러자 시즈오는 얼이 빠진 표정을 했다. 고백이라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그러며 있는 힘껏 인상을 쓰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괴물처럼. 그 모습이 좋았다.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듯이 내뱉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도망쳐줄게. 시즈 앞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이자야는 의무적으로 시즈오를 도발했고 시즈오는 그런 이자야를 향해 여전히 무언가를 던졌다.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같았음에도 더는 무가치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재미없었던 나날들은 그 시점부터 다시금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흑백 영화 같은 일상에 색을 입힌 건 세간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연애였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었기에 시즈오와의 사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여전히 학내 대다수는 오리하라 이자야와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다고 여겼다. 심지어 시즈오와 이자야를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키시타니 신라조차도 그랬다. 대체 시즈오와 언제까지 싸울 건데? 신라가 이전보다 자주, 그런 질문을 던졌고 그때마다 이자야는 대답했다. 평생?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것도 나쁘진 않아. 그건 사실이었다. 그가 지금처럼 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기만 한다면, 정말이지 모든 게.

 괜찮았는데. 그런 관계도 오래가진 못했다. 사귄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를 관계였지만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옅은 주황빛이 하늘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하굣길에서였다. 연애라 할 수 없는 연애를 하게 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을 잡아본 적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그 날, 그 하굣길에서 시즈오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 왔을 때. 시즈오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의 소녀를 대하는 것처럼. 그만 푸흐흐, 하고 웃음이 터졌다. 터진 웃음은 이내 얕은 헐떡임이 되었고 종내 흐느끼는 소리로 변모했다. 그것이 괴로움을 뜻하는 건 아니었을진대 시즈오는 화들짝 놀라며 제가 잡은 손을 도로 빼내려고 했다. 순간 속에서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역류하는 감정이 있었다. 불쾌했다. 이자야는 빠져나가려는 손을 강하게 붙들었다.

 그 뒤로는 시즈오와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이자야는 많은 것이 변하리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시즈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손을 잡은 그 날 이후로 시즈오는 이자야를 피했으므로.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그것이 서글프다거나 기분 나쁘다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거리를 두는 행동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다정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자야는 생각했다. 이것은 오래된 습관이라고. 지금까지 반복된 일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오랫동안 시즈오는 혼자였다.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떠나가는 바람에 최종적으로는 혼자 남게 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시즈오의 폭력은 언제나 그에게 다가오는 손길들을 태워버리곤 했다. 손길이 타버리고 나면 그 자리에는 사람들이 다가왔다는 흔적만이 남았다. 잿더미만이 남았다. 그것은 오래도록 시즈오를 괴롭혔다. 존재의 부재는 괴물의 가슴에 막을 수 없는 구멍을 남기고 이따금 폐부 깊숙한 곳을 쿡쿡 찔러댔다. 이자야는 알았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두려워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잿더미를 밟고 시즈오에게 다가온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존재를 다시 태워 버릴까 봐. 혹여 상처를 입힐까 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너는 다만 인상을 찡그리면 되는데. 역정을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나란 인물을 언제까지나 뒤쫓으면 되는데.

 햇빛을 잔뜩 머금은 모래알처럼 빛나던 일상이 또다시 빛을 잃었다.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괴물이 오리하라 이자야를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라는 괴물은 필요했지만 사람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시즈오의 존재 의의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리하라 이자야는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밀어냈다. 졸업식 날 시즈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걸로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뒤로도 정신을 차려보면 등 뒤에 시즈오가 있었다. 뒤늦게야 그걸 눈치채고 도망가면 시즈오는 뒤를 쫓아왔다. 라이라 고등학교와 라이진 고등학교가 갓 통합했을 무렵,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이제는 괴물이 아니게 된 괴물은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어떠한 해답을 요구했다. 감정을 요구했다. 사람처럼. 나는 네게서 더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데, 어떠한 대답도 내놓을 수 없는데, 너는 자꾸만 내게서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

 끔찍한 일이야. 이자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미에가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로 이자야를 바라보았다. 이자야는 나미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간단해. 이자야는 광대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시즈가 왜 싫으냐고 물었지. 대답은 시즈가 끔찍하게 싫으니까 야. 정말이야. 그게 전부라고. 싫은데 달리 이유가 또 필요하겠어?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