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자야 커피(IZAYA COFFEE) ▶시안
오전 6시 30분. 아직 달이 떠 있는 하늘은 어스름했다. 나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이겨내기 위해 손을 모아 입김을 후, 후 불며 걸음을 빨리했다. 저 멀리 길이 끝나는 곳에 서 있던 가로등이 붉은 잔상을 남기며 꺼졌다. 세 갈림길 위. 조금 전까지 가로등 불빛이 어렴풋이 비추던 ‘IZAYA COFFEE’의 간판이 점점 가까워졌다. 영문 표기 가운데에는 남자의 옆모습을 본 딴 로고가 자리했다. 내리뜬 눈매와 비죽 올라간 입 꼬리는 모델로 삼은 이를 쉽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느새 카페의 출입문 앞에 섰다. 손바닥만 한 ‘Close’ 표지판이 삐뚤게 달려있어 새침한 인상을 풍겼다. 그 뒤로는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었고, 얇은 가로줄 틈새로 보이는 카페 내부는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다. 나는 경보기에 보안카드를 읽힌 다음 카디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울렸다. 무릎을 굽히고 바닥 가까이에 있는 구멍, 까치발을 들고 머리 위 높이 떠있는 구멍에 순서대로 각기 다른 열쇠를 넣고 돌렸다. 이음새가 맞물리는 소리를 두 번 들은 후 문을 열었다. 문이 비켜선 만큼 달빛이 카페 내부에 새어들었다. 그 끝자락에 사람의 머리가 닿았을 때는, 용케도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누군가의 형상은 달빛 속에서 아주 천천히 드러났다. 감은 눈꺼풀 위에 빛이 닿자 그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사…사장님?”
목격한 장면상으로든 정황상으로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털 코트를 덮고 있는 저 사람은 틀림없는 사장님이었다.
“너 왔니?”
사장님이 끙끙거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댁에 안 가셨어요?”
오픈 준비해야 되는데. 머릿속으로는 그런 계산을 하면서 카페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다시 그늘 속으로 얼굴을 숨긴 사장님이 나른하게 웃었다. 얼른 전등을 켜고 청소부터 해야 했지만, 지금의 사장님에게는 엷은 불빛이라도 살인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친구들이 밤새 먹여 대서 말이야. 집에 못 가고 이리로 왔어.”
“아.”
친구 분들이랑 한잔 하셨나보다. 아니, 상태를 보아하니 한잔이 아니라 과음하신 것 같지만. 그보다 친구가 있으셨구나. 새삼 감격스러웠다. 몇 사람인가 떠올랐지만 그들은 친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미에 매니저님이 언젠가 입술을 짓씹으며, 저 인간은 저 나이가 되도록 친구 한명이 없어서 사람을 귀찮게 오라 가라 한다, 그것도 혼자 밥 먹기가 싫어서, 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저 인간이란 사장님, 저 나이란 24세를 말했다. 매니저님은 사장님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그거랑은 아무 상관없이 매니저님은 사장님을 막 대했고, 사장님은 그걸 은근 즐기는 듯했다. 사장님은 늘 함께 전골을 먹자고 청했지만 매니저님은 매번 거절했다. 인생이 아웃사이더인 사람은 상종을 말아야 한다는 게 매니저님의 지론이었다.
그런 뒤에 사장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에게도 청해왔다. 그렇담 네가 같이 먹어줄래? 전골, 맛있다구, 하면서. 나는 알바를 하루 쉬게 해주면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사장님은 그거 가게 문을 하루 닫으라는 소리 아니냐고 했고, 나는 그러니까 다른 알바도 뽑으라고 타일렀다. 그럼 사장님은 너무도 상큼하게 “싫어!” 하고 외치고는 덧붙였다. 나는 좋아해, 노예 계약. 그 어감은 정말이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노예. 노, 예, 라고 일부러 강조하면서 발음하시니까.
“왜 그러셨어요. 평소에 잘 안 드시잖아요.”
아픈 게 아니라면 봐줄 의무는 없었다. 나는 사장님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쳐 진열대 너머로 들어갔다. 막 스태프 실로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찾는데 사장님이 뭐라고 웅얼거렸다. 뭐라고요? 외치는 순간 달칵, 커피 머신 위의 불이 켜졌다. 사장님이 털 코트 속에 몸을 파묻었다.
“생일이었거든.”
사장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스태프 실에서 청소도구를 미리 꺼내놓았다. 대걸레, 빗자루, 쓰레받기, 클리너, 그 위에 손걸레.
“누구 생일요?”
“나.”
터무니없이 담담한 어조라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뻔 했다.
“네?”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다 말고 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장님이 키득거렸다.
“나. 내 생일. 오-월 사-일. 어제.”
엄청 먹였지, 그 녀석들. 죽을 것 같아. 나는 사장님을 내다보는 자세 그대로 멍하니 서서 그의 혼잣말을 들었다. 그걸, 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구? 사장님이 되물었다. 나는 억울함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책망하듯 말해버렸다. 아직도 눈을 감은 채, 잠결일 게 분명한 사장님은 “미리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줬을 것처럼 말하네.” 하고 대꾸했다. 그거야, 까지 내뱉은 나는 곧 입을 다물고 스태프 실 문을 닫았다. 묵묵히 카디건과 셔츠를 벗고 카페 로고가 새겨진 블라우스와 에이프런을 입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스태프 실 문이 열렸다.
“불만이야?”
그리고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야말로 비명을 지를 타이밍이었으나, 간신히 내리 눌렀다. 나는 사장님을 보지 않았다.
“저 옷 갈아입는 중인데요.”
“글쎄, 다 갈아입었잖아?”
“아니었으면요.”
“그럴 리가 없지. 계산했단 말이야.”
뭘 계산하는 거야, 이 인간. 그제야 황당한 표정으로 사장님을 돌아보았다. 검고 단정한 머리카락과 총총한 눈동자, 가는 선 위에 여유 있게 자리한 이목구비가 순서대로 눈에 들어왔다. 과음을 하고 드러누워도 붓지 않았다. 왜지. 그새 기운을 차린 사장님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선물 줄 거야?”
“생각해보구요.”
나는 사장님을 지나쳐 걸레와 클리너를 들고 야외로 나갔다. 유리창을 몇 번 문지르는 동안 유니폼을 입은 사장님이 걸레를 들고 나타났다. 화이트셔츠에 허리서부터 길게 떨어지는 검정색 에이프런을 두른 사장님은 방금 전까지 숙취에 시달리던 사람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늘 오프시잖아요?”
“생일 안 가르쳐줬다고 삐친 알바생을 위해 봉사활동이라도 할까 싶어서.”
“됐습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장님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안쪽 창을 닦기 시작했다. 어때, 성실한 사장님이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사장님의 목소리가 왕왕 울리듯이 전해졌다. 나는 삐죽거렸다.
“주정부리는 것 같아요. 술 냄새나요.”
혼잣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손으로 입을 동그랗게 감싼 사장님이 창문에 대고 말했다. 또박또박.
“거, 짓, 말.”
그리고는 눈웃음을 치며 나를 가리켰다. 술주정. 명백한 술주정이다. 기분이 나빠진 나는 사장님을 피해 다른 창으로 갔다. 당연하다는 듯 사장님이 따라왔다. 닦던 곳, 마저 닦으세요, 잔소리하자 다 닦았어, 능청을 떨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생일. 작게 속삭여보았다.
“생일 축하해요.”
적어도 축하 정도는 제날 할 수 있게 해달란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작게, 고개를 숙인 채 토를 달고는 창문을 벅벅 닦았다. 안 들리네, 하면서 장난을 걸 줄 알았던 사장님이.
“고마워.”
순순하다. 너무. 나는 조금 웃어버렸다.
